[이슈라인=장사라 기자] 프랑스 인상주의의 핵심에 서 있던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는 평생 빛과 시간의 떨림을 화폭에 옮기려 했다. 그러나 그가 인상주의의 새로운 길을 열던 1870년대 중반, 세상은 그가 제시한 미술적 혁신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1874년 첫 인상파 전시회에서 모네의 〈인상–일출〉을 본 비평가들은 “불쌍한 장님들의 그림”이라며 모멸을 던졌다. 안개 낀 풍경을 너무 투박하게, 너무 낯설게 그렸다는 이유에서였다.

모네는 그 조롱을 고스란히 견뎠다. 그리고 그 상처는 다시 새로운 실험을 향한 그의 발걸음을 밀어 올렸다. “그렇다면, 진짜 안개를 보여주겠다.” 모네의 시선은 파리 북서쪽, 근대 도시의 상징으로 떠오르던 생 라자르(Saint-Lazare) 역으로 향했다.

※ 근대 문명의 현장, 그 속에서 발견한 또 다른 ‘풍경’

1877년의 파리는 산업혁명이 남긴 변화를 몸으로 느끼던 도시였다. 증기기관차는 도시의 시간을 재편하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바꾸고, 금속과 유리로 이루어진 구조물은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자연 속 빛을 좇던 화가는 그 변화의 심장부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37세의 모네에게 생 라자르역은 단순한 교통시설이 아니라 ‘도시라는 생명체’의 호흡이 드러나는 무대였다. 기차가 뿜어내는 증기, 구조물 사이로 스며드는 빛, 플랫폼을 오가는 사람들의 흐름이 모두 그에게는 하나의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그 열의는 역장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는 모네를 위해 기차 출발 시간을 조정하고, 증기가 더 짙게 퍼지도록 석탄을 넣어주었다. 모네는 그렇게 안개와 빛이 뒤섞인 장면을 수없이 관찰하고 포착했다.

※ 연기와 빛이 만든 도시의 안개… 모네가 본 ‘근대’

이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12점의〈생 라자르역 La Gare Saint-Lazare〉연작이다.
이 연작의 가장 큰 특징은 ‘도시가 만들어낸 안개’다. 기차의 증기는 역 내부를 흐릿하게 가리고, 유리 지붕 사이로 스며든 빛은 금속 구조물에 부딪혀 층층의 색채를 만들어낸다. 모네는 자연의 안개가 아닌, 근대 문명이 뿜어낸 안개를 바라보며 새로운 회화 언어를 구축했다.

〈생 라자르역의 증기기관차는 그 정점을 보여준다. 연기 속에 실루엣처럼 드러난 기차, 플랫폼 위의 사람들, 그리고 아침의 공기가 뒤섞이는 장면은 인상주의가 도시와 만났을 때 어떤 미적 가능성이 열리는지 웅변한다.

※ 거칠다는 조롱에서 도시 미술의 새 장을 열기까지

당대 비평가들은 여전히 “형체가 없다”, “붓질이 난잡하다”며 혹평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늘날 미술사는 모네의 이 도전을 도시 미술의 출발점으로 기록한다. 자연 풍경에 집중하던 기존 인상주의의 경계를 넘어, 근대화·산업화·도시 문명이 만들어낸 장면까지 포착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조롱에 맞서 안개를 그리겠다는 그의 의지는 결국 근대 예술의 시선을 자연에서 도시로 확장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생 라자르역의 연기와 빛, 금속의 울림과 유리의 반짝임은 15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캔버스 위에서 쉼 없이 흐르고 있다.

모네는 그렇게 말했다. 예술은 언제나, 변화의 한복판에서 다시 태어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