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라보는 익숙한 서사에 도전장을 내민 책이 출간됐다. 진명행 작가의 신간 『맨얼굴의 독립운동사』는 독립운동사를 둘러싼 기존의 영웅 신화를 넘어, 사료를 기반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저자는 “역사는 감동의 서사가 아니라 사실 위에 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알고 있던 이야기들을 다시 점검하자고 제안한다.
이번 책의 출발점은 2000년대 초반 학생운동권과의 논쟁이었다. 진 작가는 당시 운동권 세력이 대한민국을 친일세력이 세운 국가로 규정하고, 북한을 항일 빨치산 전통의 정통성을 가진 국가로 보는 역사 인식을 마주하며 문제의식을 키웠다. 그는 “국민들의 역사 인식 틀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 속에서 집필을 시작했다.
책은 3·1운동의 재해석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교과서 속 3·1운동이 지나치게 성역화된 반면, 실제로는 다양한 요구와 불만이 폭발한 사건이었다는 것이다. 진 작가는 단일한 민족주의 운동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의 갈등과 생존 투쟁의 성격이 강했다고 분석하며, 당시 국제 정세에 대한 오해와 유언비어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외국인 인물에 대한 재평가도 눈길을 끈다. 헐버트와 베델을 흔히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으로 기억하지만, 저자는 이들 역시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나 개인적 이익에서 자유롭지 않았다고 말한다. 복음을 전한 신앙적 의미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무비판적으로 ‘애국자’로 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경고다.
유관순 열사 역시 신화적 서술에 가려진 인물로 조명된다. 진 작가는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했다’는 정설을 재검토하며, 사망 경위에 과장과 왜곡이 적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특정 인물을 신화로 떠받드는 과정에서 다른 사실이 배제되는 것은 역사 이해를 왜곡한다는 것이다.
책 후반부에서는 고종의 비자금 문제, 무장독립운동 조직의 내부 갈등, 동족상잔의 비극 등이 다뤄진다. 특히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는 봉오동 전투 이전 공산주의 선전활동을 위해 만주로 건너간 기록을 제시하며, 단순한 영웅 이미지 너머의 복잡한 행적을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 작가는 “도덕적 흠결을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묻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진명행 작가는 오랫동안 독립운동사 연구와 사료 비판 작업을 이어온 역사 연구자다. 학생운동 시절부터 이어진 문제의식은 국내외 자료와 증언을 직접 추적하는 과정으로 발전했고, 이번 책은 수년간의 분석과 토론 끝에 완성됐다. 그는 불편하더라도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역사 연구자의 책무라고 강조한다.
『맨얼굴의 독립운동사』는 우리가 익숙하게 믿어온 ‘영웅 만들기’의 서사를 넘어 숨겨져 있던 진실을 드러낸다. 독자에 따라 불편할 수 있지만, 건강한 역사 인식을 위해 필요한 문제 제기다.
역사는 감동의 서사가 아니라 사실의 축적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의 역사 교육과 기억 방식에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