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이 8월 24일 여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노란봉투법’을 두고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로 저항했다. 그러나 24시간이 지나자 민주당은 국회법이 보장한 절차에 따라 종결동의안을 제출했고, 절대다수 의석을 앞세워 토론을 조기 종결시켰다. 표결은 예정된 수순처럼 이어졌다. 법적으로는 정당한 절차였지만, 소수당의 발언권은 사실상 봉쇄됐다.
필리버스터 제도는 원래 다수당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다. 소수당에게 최소한의 발언 기회를 보장하고, 사회적으로 쟁점이 큰 법안에 대해 충분한 토론이 이루어지도록 하자는 것이 입법 취지였다. 그러나 현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는 민주당이 언제든지 종결동의안을 제출해 차단할 수 있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법률은 토론과 숙의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다수당의 의석수에 의해 자동 통과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민주당의 이러한 태도는 입법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정치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모순을 드러낸다. 국회는 본래 사회 각계의 의견을 반영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장이어야 하지만, 지금은 오직 다수당의 입장만 반영되는 통과 절차로 전락했다. 의회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는 살아 있으나, 그 정신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진보 성향 정당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해 찬성표를 던졌고, '경제 악법'이라며 법안에 반대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투표를 거부했으며, 개혁신당 의원(3명)들은 투표에 참여해 반대표를 던졌다.
야당의 대응 역시 문제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를 통해 저항 의지를 드러냈지만, 결과가 바뀌지 않는 싸움에 매달리며 정치적 무력감을 노출했다. 필리버스터는 국민에게 입법의 쟁점을 설명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전략과 대안 없는 장시간 발언은 국민에게 공허한 몸부림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야당이 스스로 존재감을 증명하지 못하는 사이, 민주당의 독주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이 같은 여야의 모습은 국회를 토론과 타협의 장이 아니라, 힘의 논리와 절차적 기계만 작동하는 전쟁터로 변질시키고 있다. 법안의 사회적 파장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사라지고, 의회는 민의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정파적 힘겨루기의 무대로 전락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인 숙의의 가치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합법적 절차라는 방패 뒤에 숨어 의석의 힘만으로 국회를 운영해서는 안 된다. 다수결은 민주주의의 원리지만,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과정 없이는 그 자체로 독주와 다름없다. 국민의힘 또한 무의미한 저항 퍼포먼스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지금의 국회는 합법적 절차를 내세운 민주당의 입법 독주와, 이에 대응하지 못하는 국민의힘의 무력감이 맞물리며 민주주의의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다. 의회가 ‘민의의 전당’이라는 본령을 되찾기 위해서는 다수당의 절제와 소수당의 대안 제시가 동시에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국회는 국민과 동떨어진, 오직 정쟁만 반복하는 공간으로 굳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