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 (사진=이슈라인)
[이슈라인=장사라 기자] 파리 튈르리 정원 한쪽에 자리한 오랑주리 미술관. 이곳을 찾는 이들이 가장 먼저 발걸음을 멈추는 공간은 타원형 전시실이다. 그 벽면을 가득 채운 것은 클로드 모네의 말년을 대표하는 대작, ‘수련(Les Nymphéas)’ 연작이다. 높이 2미터, 길이 최대 17미터에 이르는 초대형 파노라마는 단순한 회화가 아니라, 관람객을 감싸는 하나의 세계다.
모네는 지베르니 정원의 연못을 수십 년간 관찰하며, 자연과 빛의 변화에 대한 집요한 탐구를 이어갔다. 1차 세계대전 직후, 그는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이 연작을 프랑스 정부에 기증했고, 오랑주리 미술관은 그의 뜻을 존중해 자연광이 들어오는 전시실을 설계했다. 덕분에 관람객들은 시간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빛 속에서 수련의 색채와 표정을 온전히 체험할 수 있다.
모네는 말년 30여 년 동안 250점이 넘는 수련을 그렸다. 초기 작품은 정원의 다리와 주변 풍경을 담아 구도와 공간이 뚜렷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화면은 점차 추상적이고 평온하게 변화한다. 수평선은 사라지고, 수면 위에 반사된 나무와 하늘의 이미지가 흐릿하게 녹아들며 실제 풍경인지 감정의 반영인지 경계가 모호해진다.
오랑주리 미술관에 설치된 여덟 점의 대형 연작은 그 절정이다. 각 패널은 서로 다른 계절과 시간대를 담고 있지만, 모두가 연결되어 하나의 긴 사색의 여정처럼 이어진다. 관람객은 화면 속으로 들어가듯, 끝없이 펼쳐지는 자연의 환상 속에 몰입하게 된다.
예술사 연구자들은 이 연작을 “모네의 인생과 시선이 녹아든 궁극의 작품”이라 평가한다. 단순한 정원의 연못이 아니라, 빛과 색채가 끊임없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인생의 순환을 담아낸 철학적 공간이라는 것이다.
특히 아침의 고요한 빛이 전시실에 스며드는 순간, 연보랏빛과 물빛, 초록과 푸른 단색들이 서로 섞이며 살아 움직이는 수련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는 모네가 생전에 가장 중요하게 여긴 ‘빛의 움직임’을 공간 자체가 구현하도록 한 설계의 결과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모네의 수련 외에도 르누아르, 세잔, 마티스, 피카소 등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거장들의 작품을 함께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미술관의 심장은 단연 모네의 수련이다.
그림 앞에 선 관람객은 단지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모네가 남긴 ‘평화의 풍경’ 속에서 고요한 위로와 사색의 시간을 선물받는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자연의 빛과 색으로 치유를 꿈꾼 한 화가의 마지막 메시지가 오늘도 파리 한복판에서 조용히 울려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