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 (사진=연합뉴스)

[이슈라인=김석민 기자] 국내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규모가 크게 늘었지만 정작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 목적 발행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들이 신규 투자보다 기존 부채 상환에 몰두하면서 산업 전반의 성장 잠재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1~10월 금융사를 제외한 일반 기업의 회사채 신규 발행 물량 가운데 투자 목적 비중은 3%에 불과했다. 이는 관련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사실상 대부분의 회사채가 차환이나 차입금 상환에 사용됐다는 의미다.

고금리와 경기 둔화가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의 자금 운용 전략은 ‘방어형’으로 전환됐다. 과거 저금리 시기에 차입을 늘렸던 기업들은 만기가 돌아오는 부채를 상환하거나 조건을 바꾸기 위해 회사채 시장을 찾고 있지만, 설비 투자나 신사업 확대를 위한 자금 조달에는 극히 소극적인 모습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회사채 발행 자체는 늘었지만 질적으로는 ‘생존형 발행’에 가깝다”며 “금리 부담과 실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투자를 미루고 현금 흐름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은 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투자 위축이 지속될 경우 생산성 개선과 신성장 동력 확보가 지연되고, 이는 다시 기업 실적과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제조업과 서비스업 분야에서 신규 투자와 고용 창출이 줄어들면 산업 구조 전반의 활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금리 안정과 함께 기업 투자 심리를 되살릴 수 있는 정책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단기적인 부채 관리 지원을 넘어, 기업들이 다시 ‘확장 국면’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예측 가능한 금융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와 금융당국이 혁신 산업에 대한 세제 혜택과 투자 인센티브를 강화해 기업들이 미래 성장 동력 확보에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재 회사채 시장은 기업 성장의 연료가 아닌 단순한 ‘빚 돌려막기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기업들의 투자 회복 시점이 언제가 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산업 경쟁력과 고용 시장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