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라인=김석민 기자] 세계 최대 GPU(그래픽처리장치) 제조사 엔비디아(Nvidia) 가 미국 인공지능 반도체 스타트업 그록(Groq) 의 기술과 핵심 인력을 확보하는 대규모 거래를 성사시키며, AI 반도체 시장의 판도를 다시 쓰고 있다. 이번 거래는 현금 기준 약 200억 달러(약 29조원) 규모로 평가되며, 엔비디아가 외부 기업에 투자한 금액으로는 역대 최대치다.
그록은 인공지능 모델의 추론(Inference) 에 특화된 반도체 설계 스타트업으로, 구글의 텐서처리유닛(TPU) 설계진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기업이다. 이 회사는 GPU 대비 낮은 지연시간과 전력 효율을 목표로 하는 LPU(Language Processing Unit) 설계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AI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데 강점을 갖는다.
엔비디아는 이번 거래를 통해 그록의 핵심 기술 라이선스와 인력을 확보하고, 설계 기술을 자사 AI 팩토리 아키텍처(NVIDIA AI Factory) 에 통합할 계획이다. 특히 그록의 창업자이자 CEO인 조너선 로스(Jonathan Ross) 와 최고운영책임자 서니 마드라(Sunny Madra) 등 주요 엔지니어들이 엔비디아에 합류해 기술 고도화를 지원하게 된다.
엔비디아는 공식적으로 이번 거래를 ‘인수(Acquisition)’가 아니라 비독점적 라이선스 계약 형태로 발표했지만, 업계에서는 사실상 기술과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사실상의 인수·합병(M&A) 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반독점 규제 리스크를 줄이려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평가다.
이번 투자는 엔비디아가 AI 하드웨어 전반에서의 주도권을 확고히 다지려는 의지를 반영한다. 그동안 엔비디아는 GPU를 중심으로 AI 모델 학습과 데이터센터 수요를 주도해 왔으며, 추론 단계에서도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해 왔다. 이번 거래로 GPU 중심 생태계에 추론용 반도체 기술까지 포괄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게 됐다.
한편 이 거래는 삼성전자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던진다. 그록은 과거 투자 라운드에서 삼성전자를 포함한 글로벌 자본과 협력 관계를 맺었으며, 삼성전자는 그록 AI 칩의 파운드리(위탁생산) 파트너로 거론돼 왔다. 엔비디아가 그록의 기술과 인력을 흡수함으로써, 삼성전자의 AI 반도체 공급망과 파운드리 사업 전략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어떤 식으로 협력 관계가 유지될지, 혹은 변화가 생길지에 시장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번 거래는 단순한 인수 규모를 넘어, AI 반도체 시장 경쟁 구도를 재편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엔비디아의 거대한 현금 보유력과 기술 확보 전략은 다른 빅테크 기업과의 경쟁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할 수 있다. 동시에 반독점 우려, 글로벌 AI 칩 생태계의 경쟁 체제, 그리고 기술 혁신의 향방 등에 대한 논의도 한층 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AI 시대 하드웨어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이 기술력뿐 아니라 인재 확보와 전략적 투자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엔비디아의 그록 거래는 이 분야의 중요한 분수령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