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라인=김석민 기자]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현장 시찰 장면을 공개하면서, 한반도 안보 지형은 또 한 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8,700톤급으로 추정되는 대형 선체가 거의 완성된 모습이 담겼고, 핵추진을 위한 핵심 장비가 상당 부분 진척된 정황도 포착됐다. 김 위원장이 딸과 함께 현장을 찾은 장면까지 더해지면서, 이번 공개는 단순한 기술 과시를 넘어 정치적 메시지에 가까운 행보로 해석된다.
핵추진잠수함(SSN)은 단순한 해군 전력이 아니라 국가 전략 능력의 정점에 놓인 자산이다. 디젤·전기 추진 잠수함이 제한된 시간 동안 은밀성을 유지하는 데 그친다면, 핵잠은 장기간 잠항과 광범위한 작전 반경을 통해 ‘지속적인 은밀함’을 구현한다. 무엇보다 상대가 위치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핵잠은 불확실성을 무기로 삼는다. 여기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까지 결합될 경우, 핵잠은 단순한 플랫폼을 넘어 ‘최후의 보복 능력’을 보장하는 억제 수단으로 자리매김한다.
북한의 이번 공개는 두 가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첫째,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한국을 겨냥한 전략적 압박이다. 둘째, 대내적으로는 “핵무력 완성”을 체제 업적으로 과시하려는 의도다. 북한이 핵잠을 ‘전략 유도탄 잠수함’으로 규정한 것은 단순한 해군력 증강이 아니라, 국가 핵전력의 축을 해상으로 확장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더 중요한 대목은 북한의 핵잠 개발이 단순한 기술 시위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SLBM 능력을 확보했다고 주장해온 북한은 디젤 기반 탄도미사일 잠수함을 진수한 경험도 있다. 그러나 디젤 잠수함은 장기 잠항에 한계가 있어 ‘은밀한 핵 억제’라는 목적을 안정적으로 달성하기 어렵다. 핵추진잠수함은 이러한 취약점을 구조적으로 보완하며, 북한의 핵 전략이 ‘선제 사용’보다 ‘생존성과 보복 능력’ 강화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물론 ‘핵추진’이라는 표현이 곧바로 완성된 전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원자로의 안정적 운용, 승조원 훈련, 방사선 안전, 장기간 항해를 뒷받침할 운용 교리 등은 시간이 필요한 과제다. 북한이 독자적으로 이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으며, 최근 북·러 협력 심화 속에서 외부 기술 지원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공개가 던지는 가장 큰 충격은 ‘수중 핵 억제’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지상 이동식 미사일은 위성 감시망에 노출되고, 공중 전력은 방공망과 충돌한다. 그러나 수중 전력은 다층 탐지망과 장기 추적이 필요하며, 그마저도 완전한 확신을 담보하기 어렵다. 핵잠은 존재 자체만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무기이기에, 위기 상황에서 오판 가능성을 높이고 계산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한국 역시 대응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북한의 수중 위협이 현실화되면서, 디젤·전기 추진 잠수함만으로는 장기 추적과 상시 감시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국내 연구기관들은 비확산 문제, 제도·법적 제약, 한미 협력 프레임, 국제적 투명성 확보 등 다양한 쟁점을 정책 의제로 끌어올리며 논의를 구체화하는 모습이다. 다만 한국의 핵잠 논의는 ‘비핵무장(재래식)’을 전제로 하며, 외교·법·정치적 제약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복합 방정식이다. 결국 핵잠 도입의 핵심은 “가능 여부”가 아니라 “정당성 확보 방식”에 있다.
이 경쟁은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의 핵잠 전력화는 일본의 해양안보 인식과 방위력 증강 논리를 자극할 수 있으며, 중국과 러시아 역시 동북아 수중 전력 구도의 변화를 주시할 수밖에 없다. 대잠전(ASW) 역량이 강화될수록 역설적으로 충돌 위험과 근접 조우 가능성도 커진다. 수중은 확인이 어려운 영역인 만큼, 작은 오해가 큰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핵추진잠수함을 둘러싼 남북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군비 경쟁’의 서막이다. 수면 위에서는 대화와 경고가 오가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조용하고 집요한 힘겨루기가 이어진다. 이는 단순한 함정 보유 경쟁이 아니라, 위기 상황에서 상대의 계산을 바꾸고 억제의 심리를 재구성하는 게임이다.
한반도 안보는 이제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다. 핵추진잠수함이라는 전략 자산의 등장이 억제를 강화해 안정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오판과 불확실성을 증폭시켜 불안정을 구조화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설계다. 군사적 대응뿐 아니라 외교적 파장, 비확산 원칙, 동맹 관리, 위기 통제 메커니즘까지 함께 고려하지 못한다면, 수중에서 시작된 이 경쟁은 예상보다 훨씬 깊고 오래갈 가능성이 크다.
유근성
연세대학교 공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