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라인=김석민 기자]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오는 20일로 발효 10주년을 맞는다. 체결 당시만 해도 ‘세계 2위 경제대국과의 대규모 경제 협력’이라는 기대 속에서 출발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중국의 제조업 고도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겹치면서, 한중 FTA는 한국에 불리한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발효 직후 급증하던 양국 교역 규모는 최근 몇 년간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화학·철강이 중국의 자체 생산 능력 확대에 밀리면서, 한국 기업의 중국 매출 비중도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단순 제조국에서 첨단 기술 제조국으로 급성장한 뒤, 한국의 전통적인 수출 구조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가장 심각한 변화는 무역수지 적자의 고착화다. 과거 수십 년간 한국의 안정적 ‘흑자 창구’였던 중국은 이제 연속 적자를 기록하는 시장으로 바뀌었다.
한국경제연구원 한 연구위원은 “중국의 내수 중심 정책 전환, 기술 자립도 상승, 가격 경쟁력 악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며 “FTA가 발효됐음에도 한국이 얻는 혜택은 줄고 중국이 가져가는 이득은 커진 ‘역전 구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FTA가 기대했던 통상 환경은 이미 사라졌다. 미·중 무역전쟁 이후 글로벌 공급망이 미국 중심과 중국 중심으로 양분되면서 한국 기업은 선택을 강요받는 처지에 놓였다.
특히 반도체와 배터리 산업은 미국의 규제와 중국의 보복 가능성이 상존해 FTA의 자유무역 정신이 사실상 작동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정부 관계자는 “10년 전 협상 기반은 지금과 전혀 다르다”며 “FTA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지정학적·전략 산업적 리스크가 커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산업계와 학계에서는 한중 FTA의 부분 재협상 혹은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첨단 기술, 디지털 무역, 공급망 안전 등 새롭게 중요해진 영역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는 “한국이 중국 시장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무역수지 적자와 산업 공백이 장기화될 수 있다”며 “현재의 FTA 구조를 미래 산업 중심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중 FTA 발효 10주년. ‘기회의 창’으로 시작된 협정은 이제 고민의 무게가 더 큰 과제로 돌아왔다. 격변하는 글로벌 통상 질서 속에서 한국이 어떤 새로운 전략을 마련할지, 다음 10년의 성패가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