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고등학교


농어촌의 학생 수 감소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최근 고교 선택 기준이 ‘학년 300명 이상 학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이 문제는 농촌 교육의 존폐와 직결되는 더 큰 구조적 위기로 확산되고 있다. 도시 학생들이 다양한 프로그램과 풍부한 선택권을 기반으로 학습 환경을 확장해나가는 동안, 농어촌 학생들은 학교 선택 자체가 제한되는 이중의 불리를 겪게 된다. 교육은 국가가 보장해야 할 최소한의 공공 서비스이자 기본권이다. 단순한 규모 기준은 농어촌 교육의 현실을 담아내기엔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무엇보다 농어촌에서는 애초에 ‘학년 300명 이상’이라는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학교가 거의 없다. 지역 인구 감소와 학령인구 축소는 이미 구조적인 흐름이 되었으며, 이러한 기준은 오히려 교육 불균형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학교의 규모가 곧 교육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의 농촌 학교는 규모는 작아도 아이 한 명 한 명을 살펴볼 수 있는 밀착형 교육의 장점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장점이 제도적 지원 부족 속에서 점점 사라져간다는 점이다.

따라서 농촌 교육에 대한 국가적 대책은 학교 규모 기준 완화, 지역 특화 교육 지원, AI·디지털 기반 학습 시스템의 적극 도입, 그리고 교원 안정성 확보라는 네 가지 축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첫째, 학교 규모 중심의 정책을 지역 상황에 맞게 유연화해야 한다. 도시와 농촌의 조건은 다르다.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평등이 아니라 형평성의 파괴다. 국가가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학교 기준’을 설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농촌 학교에는 규모 대신 교육 접근성, 지역사회 기여도, 기초학력 보장률 등을 중심으로 한 별도의 평가 체계를 적용할 수 있다.

둘째, 농촌 학교만의 특화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 농업·생태·바이오·환경 분야는 도시 학교가 결코 제공할 수 없는 농촌만의 교육 자산이다. 이는 학생들의 진로 확장뿐 아니라 지역 산업을 이끌 미래 인재 양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길이다. 농촌 학교를 ‘지역 산업과 연결된 살아있는 교육 실험장’으로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다.

셋째, 디지털·AI 기반의 수업 인프라 확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농어촌의 가장 큰 불리함은 교육 자원의 부족이다. 전문 교사 부족, 다양한 수업 선택 제한, 심화 과정 부재가 대표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온라인 공동교육과정, AI 튜터, 원격 강의, 메타버스 기반 진로 체험 등 첨단 기술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 지역 간 교육 격차는 물리적 환경에서 생기지만, 기술은 그 벽을 가장 효율적으로 허문다.

마지막으로, 농어촌 교원의 안정성과 전문성을 높이는 국가 차원의 특수 정책이 필요하다. 도심 중심의 교원 수급 구조로는 농어촌 교육의 질을 유지할 수 없다. 농촌 근무 교사에게는 전문성 강화 연수, 주거 지원, 장기근속 인센티브 등 실질적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교육은 한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 전략이다. 농촌 학교가 무너지는 것은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인적 자본 전체가 약화된다는 뜻이다. 학년 300명이라는 획일적 기준은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농촌 학생들의 기회를 축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기준 강화가 아니라, 농어촌 학생에게도 도시 학생과 동일한 학습 기회와 성장 가능성을 보장하는 정밀한 국가 전략이다. 농촌 교육의 붕괴를 막는 일은 단지 학생 수를 지키는 문제가 아니다. 그곳에서 자라는 한 명 한 명의 아이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킨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민혜림
연세대학교 공학 박사
사)한국미래인재협회 회장